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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계획
대상텍스트 『노자』
수업방식 1) 강의
- 강의의 목적, 교재인 『노자』 텍스트의 특징, 『노자』의 철학적 문제의식 소개
- 대상 텍스트가 고대철학을 다루는 만큼 주요 구절을 수강생들과 함께 읽고 설명함.
2) 발표 및 토론
- 강의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담당교수가 준비한 토론주제 가운데 수강생들이 직접 토론주제를 선정.
- 전체 수강생을 대상으로 발표조를 나누어 담당교수가 준비한 토론주제에 대한 짧은 발표문 준비, 조별토론과 전체토론 진행.
- 토론주제는 『노자』 텍스트의 핵심 이론과 주제를 현실문제와 접목시키는 방식으로 정립.
3) 총괄(수업 총평 및 여러 방향으로 생각 이끌기)
- 조별 토론주제와 발표문, 토론내용에 대한 총괄
- 수강생 모두 조별 토론 주제 가운데 하나 또는 다수의 주제를 선택하여 직접 논평문 작성
수업구성 1) 수업의 의미와 목적, 수업텍스트와 주요 구절에 대한 소개 : 2시간
2) 조별/전체 발표와 토론 : 2시간
3) 조별/전체 발표 정리 및 총괄 : 2시간
4) yscec을 활용하여 논평문 작성 및 제출, 담당교수의 피드백, 수강생 상호간의 생각 나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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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인문학과 전통철학을 읽는 의미

 

인문학에 대한 이런저런 언급이 요사이만큼 많이 일어난 적도 없는 듯합니다. 인문학의 위기라 하고 인문학이 부재하여 어떤 문제가 발생한다고 하고, 심지어 경영학이나 공학도에게 인문학의 정신을 배우라고 요구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문학이 무엇인지를 한 번 고민이나 해보았는지 의심스럽고, 그렇다 하더라도 인문학이 이런저런 것이라고 자기화법으로 전달할 수 있을지 또한 궁금합니다. 일반적으로 인문학은 인간이 우리의 삶을 반성하고 성찰하는 내용으로 구성된 학문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현실에서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내가 얼마나 좋은 삶, 인간다운 삶을 지향할 수 있는지를 철저히 고민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고민은 지금 우리 시대에만 이루어졌던 것은 아닙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간이 문화, 문명을 이루는 과정에서 자신의 삶에 대한 치열한 고민을 진행했고, 그 과정과 결과를 하나의 텍스트로 세상에 남기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고대로부터의 선각자, 선지자로 불릴만한 지식인들의 통찰력과 지혜를 그들의 텍스트를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확인할 수 있고, 이러한 결과물을 통해 우리는 인문학의 기본 정신과 내용을 모색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선현들의 통찰과 지혜를 중국 고대철학자들의 논의에서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중국 고대의 지식인들은 인간을 중심으로 우리의 삶에 대한 다양한 고민을 진행하고, 그 결과로 인문정신을 싹틔웁니다. ‘인문(人文)’이라는 글자의 조합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인문은 인간이 꾸미는 행위와 그 결과물모두를 가리킵니다. 그렇다면 꾸민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우리는 하루하루 아침부터 저녁까지 겉모습을 치장하기도 하고, 마음을 잘 닦기도 합니다. 이처럼 나에게 주어진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의 상태로 가지고 가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 대해 일정한 가감이라는 형식을 부여하게 합니다. 다만 형식은 그 내용을 충실히 반영해야 하고, 내용에 대한 왜곡이 진행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러한 입장에서 공자가 문질빈빈(文質彬彬)’을 강조하였고, 이후 인문정신의 단초가 정립됩니다.

이러한 인문정신은 점차적으로 이 세상에 펼쳐지는 모든 현상의 근원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기존의 현상 배후에 있다고 믿었던 신적 존재를 숭배하던 관점에서 벗어나고자 합니다. 더불어 나의 사리사욕을 일으키는 다양한 물질 숭배를 막아 세우는 가르침으로 확립됩니다. 이 점에서 우리의 정신적 삶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인간이 신이나 외물의 지배를 받지 않게 함으로써 우리 자신이 지닌 가치를 분명히 드러내게 됩니다. 또 다른 특징은 예악을 통한 교화를 강조해 인문교육에 신경을 쓰고 무력과 권력의 압제에 반대한다는 점입니다. ‘사람을 근본으로 여기는관념, 그리고 우리가 주어진 내용을 알차게 꾸며가는 일련의 과정 모두 중국의 인문정신과 중국 전통철학의 가장 선명한 특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고대 중국의 지식인들은 인문 정신을 체계적으로 구축하기 시작하고, 그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나의 삶에 대한 성찰을 진행합니다. 일반적으로 중국 고대 지식인들은 삶에 대한 반성적 사색을 한 뒤 저마다 다른 입장에서 사상을 체계화하여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따라서 인생론, 우주론, 인식론은 모두 이러한 반성적 사색에서부터 출발하여 각각 이론적 기틀이 마련된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점에 주의해야 합니다. 고대 중국 지식인들은 결코 사변적으로만 이러한 문제를 풀고자 했던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각자 발디디고 있던 현실의 다양한 양태에 주목하고, 그러한 현실과의 연관성 아래 인문정신과 인문학을 발현시켰던 것입니다. 따라서 현실문제의 적용과 해명이라는 두 측면에서 중국고대철학을 읽어내야 합니다.

지금 이 짧은 시간에 우리는 바로 중국 고대 지식인의 삶에 대한 반성적 사유, 그리고 그 과정에서 현실을 인식하고 현실의 갖가지 문제를 풀고자 했던 다양한 시도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우리 모두는 지금 이 순간에 나의 문제나 우리의 문제, 좁은 문제나 큰 문제 모두를 해결하고자 애씁니다. 이러한 문제는 모두 지금의 나와 우리의 상황을 반영하는 것이기 때문에, 현실과의 연관성 아래 해결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가 지금에만 벌어지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오랜 시간동안 모든 장소에서 정도와 드러남의 차이는 있겠지만 모두가 함께 고민해오는 문제도 있습니다. 특수성과 보편성 모두를 인지하는 가운데, 지금 우리에게 다가오는 문제 해결을 위한 하나의 시도로서 선현의 지혜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선현의 지혜 가운데에서도 현실의 갖가지 문제를 직시하고 이를 해결하고자 하는 적극성을 가장 잘 담지하고 있는 하나의 결과물로서의 텍스트를 주목하고자 합니다. 이를 위한 하나의 유효한 시도로서 노자라는 철학자와 그의 텍스트인 노자에 다가서고자 합니다.

 

 

3. 노자와 노자에 대하여

 

노자는 중국 역사상 춘추전국시기에 활동했던 학자로 도가(道家) 학파의 창시자로 알려져 있고, 도덕경(道德經)이라고도 불리는 노자5,000여 자밖에 안 되는 적은 분량으로 구성된 상당히 함축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저술입니다. 노자는 초나라 사람으로 이이(李耳)라는 사람으로 알려졌지만, 사마천이 사기에서도 언급하듯이 구체적으로 어떤 사람인지가 불명확합니다. 오늘날 일반적 관점에 따르면 노자라는 책은 춘추시대 후기에 생존했던 이이라는 사람의 철학을 후대 사람들이 전국시대 중기 무렵에 정리하여 세상에 내놓은 것으로 여겨집니다. 여기서 한 가지 문제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불명확한 사람이 지었다고 알려진 텍스트, 그리고 여러 사람의 손을 거치면서 내용상의 변화가 있었던 텍스트가 과연 지금의 우리에게 어떠한 작용을 할 수 있을지의 문제입니다. 이러한 질문에 하나의 답을 준다면, 노자텍스트가 역사적으로 철학과 사상 뿐 아니라 문학, 종교, 예술 등의 영역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쳤고, 지금도 적지 않은 영역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전해주고 있다는 점입니다. 다시 말하면 동아시아 지식인들은 인문정신을 바탕으로 노자의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계승하고 발전시켰다고 할 수 있습니다.

노자라는 텍스트는 혼란스러운 사회 상황에서 불편한 사회현실을 올바른 방향으로 바로잡고, 당시 사람들의 의식의 전환을 요청하는 흐름에서, 세상에 수많은 이야기를 담담하게 던집니다. 일반적으로 노자라는 사람과 그 텍스트를 마주하면, 우리는 세상의 더러움을 피해 산속에 거처하며 유유자적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떠올리기도 합니다. 때로는 이상적 경지를 추구하는 점에서는 가치 있을지 모르지만, 현실적으로는 무용하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은 어느 정도 그의 철학적 문제의식과 그 해법에 대한 몰이해나 선입견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노자는 비록 적극적이며 직접적 방식으로 당시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던 지식인들과는 다른 면모를 보이지만, 그 또한 당시 사회문제를 해결하기위한 다양한 논의를 전개합니다.

 

(1) 생명을 중시하는 입장

노자를 비롯한 도가 학자들은 모두 생명을 중시하는 입장을 견지합니다. 물론 이 세상 사람들 어느 누구도 자신이 생명을 경시하는 사람은 없겠죠... 다만 나의 생명이 아닌 타자의 생명, 전체의 생명 또한 소중하게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면 머뭇거리는 사람이 적지 않을 수 있습니다. 노자는 우리가 생명을 소중하게 생각해야 관점을 설명하는 가운데, 욕망의 문제를 제기합니다. 사람이면 누구나 욕망을 지닙니다. 생리적, 본능적 차원의 욕망 뿐 아니라 사회적 욕망도 지니고 있습니다. 때로는 욕망이 충족되지 못하면 우리의 생명에 큰 피해를 입거나 사회에서 온전히 살아갈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때로는 욕망에 충족하려는 과정에서 나 자신 뿐 아니라 타자의 생명을 해치기도 합니다. 이러한 입장에서 노자는 욕망을 마주하는 방식에 대한 논의로부터 생명을 온전히 보듬어 안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려 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우리는 욕망을 무한히 충족할 수도 없고, 정반대로 욕망을 그대로 막아버릴 수도 없다는 전제로부터, 욕망을 적절히 조절해야 한다는 관점을 제시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욕망 조절의 기준은 그의 철학의 출발점이자 핵심인 무위자연의 입니다.

욕망을 절제하며 생명을 소중히 여긴다는 관점은 적극적으로 사회 안에서 나의 몫을 고민하며 더 나은 사회를 모색하는 흐름과 어느 정도 상충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개개인의 생명을 소중히 여긴다는 입장이 피세주의자들로 오해되어서는 안 됩니다. 노자 또한 결코 현실사회에서의 삶을 버리려 하지 않았고, 그 또한 사회적이고 정치적 동물로서의 인간을 인정하였습니다. 다만 사회 안에서 어떤 방식으로 어떤 삶을 지향하는가라는 목적의식과 내용이 다르다는 점은 인정해야 합니다. 이러한 생각은 고대 중국 지식인들 대다수가 고민했던 문제였습니다. 노자가 추구하고자 했던 삶의 모습은 강건함보다는 부드러움을, 남들 위에 군림하는 것보다는 겸허를 지향했습니다. 일견 우리의 상식이나 일상적 모습과는 큰 차이를 보입니다. 심지어 노자는 부드럽고 약한 것이 굳세고 강한 것을 이긴다”(노자36)고 하고, 강과 바다의 예를 들어 일체 행위를 남들에게 낮출 것을 요청합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유약하고 낮추더라도 결국에 강하고 높은 것을 이길 수 있는 근거는 어디에 있을까요? 노자는 이 세계가 상대적인 것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경험적 사실을 인정합니다. 높은 것이 있다면 낮은 것이 있고, 빠른 것이 있으면 느린 것이 있습니다. 더위와 추위, 따뜻함과 서늘함, 강함과 약함 등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과 존재의 모습은 양면성의 가치를 지닙니다. 다만 그 기준은 고정불변이 아니라 유동적이죠...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대다수의 사람들은 양면성 가운데 한 쪽만을 추구하고 이루고자 합니다. 남들보다 강하고 높고 빠르기를 바라죠. 그러다 보면 이 세계의 반쪽만을 인식하게 되고, 최종적으로 세계를 올바르게 파악할 수 있는 시각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이러한 입장에서 노자는 이 세계의 양면성을 올바로 인식하라고 요구하는 것입니다. 그 근거는 일체 사물과 사건들은 상대적이며, 상대적인 것은 영원불변한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상호 대립과 전화를 반복하기 때문입니다.

생명을 소중하게 여기기 위한 출발점으로 욕망을 조절하는 기준, 그리고 상대적 사물이 상호전화의 방식으로 상대방의 존재가치를 이룬다는 관점은 모두 노자의 를 중심으로 구성됩니다. 그렇다면 노자의 의 의미와 특징은 무엇일까요?

 

(1) 노자의 ()’무위자연(無爲自然)’

당시 대다수의 철학자와 달리 노자는 현상계의 다양한 모습을 일으키는 세계와 존재의 근원과 본질에 대한 탐구를 그의 철학의 출발점으로 삼았습니다. 한서(漢書)등 역사서의 기록에도 잘 드러나듯이, 도가 학파는 사관(史官) 출신 학자에 의해 형성되었습니다. 그들은 세상사를 기록하는 과정에서 과연 다양한 사회현상은 무엇으로부터 기인한 것인지를 탐구하게 되었고, 그 결과 사물의 근본을 파악하는 것을 그들 철학의 출발점으로 삼게 된 것입니다. 노자가 활동하던 당시 대다수 사람들은 상제(上帝) 관념을 중심으로 자연과 사회 현상을 설명하려 했습니다. 즉 일상적인 자연계의 현상과 당시 국가 대사에 해당하는 일 등의 인간사 모두를 상제가 주재하고 주관한다는 관념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이 세계와 존재의 근원으로서 상제는 그 자신의 목적과 의도에 따라 이 세계를 구축하고, 간섭과 지배의 방식으로 이 세계의 만물과 관계를 맺는다고 믿게 된 것입니다. 노자는 바로 이러한 상제관념에 대한 부정으로부터 자신의 철학을 세워나갑니다.

노자는 더 이상 상제라는 절대적 주재자가 이 세계의 근원이자 만물의 본질이라는 믿음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인간으로서 노자는 스스로 세계의 근원과 만물의 본질을 탐구하기 시작하고, 경험 가능한 세계의 모습을 바탕으로 이를 규정하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우리가 세계의 근원을 직접적으로 경험하지도, 최초의 생성과정에 동참하지도 못하는 건 자명한 사실입니다. 또한 세계와 만물의 근원은 우리의 인식에 들어오지 않기 때문에, 그것이 바로 이것이다라는 우리 인식의 틀 안에서의 규정 또한 불가능합니다. 노자 또한 이를 명확히 인식하여 도를 언어로 정의할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세계는 분명 그 근원을 지니고 있으며 그로부터 생성되어 나온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세계의 근원을 직접적으로 알 수는 없더라도, 우리가 그것이 무엇일 것이다라고 생각할 수 있고 그러한 생각을 바탕으로 세계의 근원에 대한 논의를 전개할 수 있습니다. 이 점에서 세계와 만물의 근원은 분명히 있는 것입니다. 노자는 바로 이러한 입장에서 노자1장에서 세계와 만물의 근원으로서의 도를 차근차근 설명합니다. 그리고 노자곳곳에서 도의 성격, 내용 및 특징에 대해 다양한 비유와 설명 방식으로 서술해 나갑니다.

일반적으로 노자라는 사람을 떠올릴 때 가장 많이 언급되는 것 가운데 무위자연이 있습니다. 그러나 뒤이어 무위자연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던지면 긴 침묵만이 흐르기도 합니다. 참 쉽지 않은 개념입니다... 먼저 무위자연의 함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앞서 언급한 노자 당시 세계의 근원이라고 믿어졌던 상제 관념을 떠올리면 됩니다. 노자는 세계의 근원인 도는 어떠한 의도나 목적을 가지고 이 세계와 만물을 만들려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자신이 만들어낸 사물과 관계를 맺을 때 간섭과 지배의 방식으로 접근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어렵지 않게 상제 관념의 내용과 정반대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이처럼 노자의 도는 무위자연의 방식으로 이 세계를 구성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없다고 봅니다. 그래서 노자는 도는 항상 무위하지만 그에 의하여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없다”(노자37)고 합니다.

이러한 도는 단순히 만물을 만들어주고 떠나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마치 인간이나 동물의 어미가 새끼를 낳고 개체로서 독립적 생활을 영위할 수 있을 때까지 정성스럽게 보살펴주는 것처럼, 도는 자신이 구현한 세계와 만물이 그 생명을 다할 때까지 지속적으로 일정한 관계를 맺습니다. 그렇다면 도는 저 멀리서 우리를 굽어 살펴주는 신적 존재일까요? 노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도는 우리를 비롯한 이 세상 모든 존재에 내재합니다. 그리고 모든 존재가 공통적으로 지니는 가장 본질적 속성으로 자리합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도는 만물을 낳고, 만물은 도에 말미암아 따른다는 양자의 관계가 성립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인간을 비롯한 모든 사물이 지향해야 하는 가장 좋은 행위 방식은 도와 동일할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노자곳곳에서 우리의 행위방식의 전환을 요청하는 구절을 엿볼 수 있습니다. 노자25장에 사람은 땅을 본받고, 땅은 하늘을 본받고, 하늘은 도를 본받고, 도는 자연을 본받는다는 구절이 나옵니다. 이 구절의 함의는 인간을 비롯한 모든 존재는 자연을 본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로 여기서 자연은 대상세계로서의 자연계를 뜻하지 않습니다. 후대 학자가운데 자연을 풀이할 때 사연(使然)’의 반대말이라고 했습니다. 사연은 무엇이 무엇으로 하여금 ~하도록 시킨다는 의미입니다. 그 반대말로서의 자연은 이러한 사연의 의미가 탈각된 것으로, 스스로 그러함, 저절로 그러함, 자연스러움, 자발적, 자기원인적 등의 의미를 지니게 됩니다. 바로 인간은 이러한 무위와 자연을 속성으로 하는 도를 본질적 속성으로 동일하게 지니며,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행위방식은 당연히 무위자연을 그 표준으로 삼아야 합니다. 노자의 이런 생각은 그의 정치담론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노자 당시의 이상적 인격은 현실 정치에서 지도자의 의미까지 담고 있으며, 대다수의 학파에서는 이를 성인(聖人)’으로 규정했습니다. 노자는 성인은 무위의 방식으로 일을 처리하고 불필요하게 말을 더하지 않는 방식으로 가르침을 행한다”(노자2)고 설명합니다. 바로 현실정치를 담당하는 위정자는 반드시 모든 사람의 본질에 따라 그들을 마주하고, 사회규범과 체제를 마련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노자는 기존의 정치방식과 다른 새로운 시스템을 주장했던 것이며, 이 점에서 그를 단순히 피세주의자, 소극적 입장을 견지한 학자로 규정해서는 안 됩니다. 다시 말해서 노자는 당시 현실에서 갖가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세계와 존재의 근원에 대한 탐구로부터 인식의 전환, 새로운 행위규범의 마련, 정치체제의 변화 등 모든 영역을 고민했던 참된 지식인이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나의 현실에 노자를 투영하여 스스로 많은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그리고 이 질문에 유효한 답을 찾기 위해서 먼저 노자의 생각을 정확히 이해하고, 지금도 통용될 수 있는 그의 생각을 바뀐 현실에 맞춰 새롭게 적용해 보아야 합니다.

 

 

4. 읽을 내용

 

노자는 분량이 적지만 함축적이고 상징적으로 서술되었기 때문에 제한된 수업시간에 모든 내용을 읽고 토론하기는 쉽지 않다고 판단됨. 따라서 주요 내용을 발췌하여 자료집 형태로 구성하여 읽도록 할 예정임.

 

5. 생각해 볼 문제 (필요할 경우 활용. 학생들이 제기한 문제를 중심으로 수업을 진행할 예정)

 

(1) 노자의 철학은 생명의 가치를 그 무엇보다 소중하게 여깁니다. 우리는 모두 나의 생명을 그 무엇보다 소중하게 생각하죠. 그렇다면 타자의 생명과 전체 생명 또한 우리의 생명을 대하듯이 소중하게 여길 수 있을까요. 가능하다면 어떠한 이유에서일까요.

 

2) 우리 모두 저마다 자신의 관점을 지닙니다. 그런데 때로는 나의 관점을 앞세워 다른 사람을 재단하려 하고, 심지어 자연계 모든 사물을 나의 관점에 따라 재구성하려고도 합니다. 그 결과 생태계 위기까지 초래하게 되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나의 관점을 앞세우는 이유는 무엇이고, 이러한 안에는 무엇이 자리 잡고 있을까요. 나를 앞세우는 관점에서 벗어나려면 우리는 어떠한 방식으로 접근해야 할까요.

 

 

3)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사회는 다양성을 인정하는 가운데 조화로운 관계 설정을 고민합니다. 이러한 고민 이면에는 다양성과 차이를 인정하기 보다는 다름을 차별하고, 때로는 다름을 나와 똑같아지라는 획일화의 논리로 다가서려는 자세가 숨어있습니다. 노자는 다양성을 인정하는 가운데 조화로운 관계를 설정할 수 있다고 믿었고, 그의 세계관이 바로 이러한 특징을 지니고 있습니다. 노자의 이런 생각이 지니는 특징은 무엇이고, 과연 지금의 우리에게 어떠한 방식으로 적용될 수 있을까요.

 

4) 노자의 철학은 약 2,000여년 이전의 현실을 마주하고 탄생한 것입니다. 과연 이러한 이론이 지금의 현실에도 동일한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시시각각 마주하는 다양한 현실 문제를 노자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을까요. 가능하다면 어떠한 문제를 접목해 볼 수 있을지 자유롭게 이야기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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