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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계획
대상텍스트 세상을 뒤흔든 편지, 로마서
수업방식 (1) 강의: 역사적 바울(historical Paul)은 누구인가? <로마서>에 나타난 중심주제,
서양회화에 나타난 바울의 이미지.
(2) 토론: <로마서>를 성경(Bible)으로 읽는 것과 고전(Classic)으로 읽는 것의 차이는?
<로마서>가 서구 지성사에 미친 영향들, <로마서>는 무시간적 교리서인가?
M. Luther의 <로마서> 이해는 적절한가?
(3) 총괄: 바울의 <로마서>가 지니는 역사적 의의와 현대적 의미
수업구성 (1) 수업의 의미와 텍스트에 대한 소개 : 2시간
(2) 준비한 내용 발표와 토론 : 2시간
(3) 발표의 정리와 내용의 총괄 : 2시간
고전읽기

. 역사적 바울(historical Paul)은 누구인가?

나는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서도 베냐민 지파에서 태어났으며 난 지

여드레 만에 할례를 받았고 히브리 사람 중의 히브리 사람입니다.

나는 율법으로 말하면 바리사이파 사람이며 열성으로 말하면 교회를

박해하던 사람입니다. 율법을 지킴으로써 올바른 사람으로 인정을

받는다면 나는 조금도 흠이 없는 사람입니다. - 빌립보서 3:5-6

 

작은 체구에 머리에는 머리칼이 거의 없고, 다리는 휘어져 있었다.

몸은 건강한 상태로 보였고, 미간이 좁고, 코는 약간 매부리코였다.

그는 은혜가 넘친 모습이어서 때로는 사람의 모습처럼 보였지만 때로는

천사의 얼굴을 가진 것처럼 보였다. -The Acts of Paul and Thecla, 2.3-

 

서구 지성사를 통해 바울만큼 극단의 찬사와 비난을 동시에 받은 인물도 별반 없을 것이다. 그는 예수의 가르침을 세계화한 교회의 건설자요, 신약문서의 절반에 해당하는 13권의 저서를 남긴 위대한 저술가요 신학자로 호평되는 한편, 단순 명쾌한 예수의 가르침을 비의적으로 왜곡시킨 음험한 사상가라는 평가에 이르기까지, 시대를 통해 바울에 관한 서구 지식인들의 입장은 그야말로 천차만별이었다. 어거스틴과 루터로 대표되는 바울의 추종자들과 니이체와 버나드 쇼로 대표되는 바울의 비판자들이, 유럽의 지성사를 통해 바울의 생애와 사상을 두고 갑론을박을 계속해 왔던 것이다. 바울에 관한 이러한 서구 지성계의 상반된 견해가 몇 해 전 영국에서 재현된 적이 있었다. 90년도 후반에 저널리스트이자 전기 작가인, 윌슨(A. N. Wilson)이 바울에 관한 전기(Paul: The Mind of the Apostle)를 출판하여 영미 독서계의 비상한 관심을 끈 적이 있었다. 그는 바울의 사상을 로마시대의 유행했던 미트라스 제의(Mithras cult)와 연관 시켜 설명하고 있는데, 바울의 그리스도역사적 예수와는 아무런 연관성이 없는, 신화 만들기의 산물이라는 것이 주장의 핵심이었다. 이에 대해 톰 라이트(Tom. Wright)라는 영국의 대표적인 신약학자는 윌슨의 주장이 지니는 문제점을 날카롭게 지적하는 책(What Saint Paul really Said?)을 내 놓았다. 그는 바울의 사상적 배경을 그레코-로만 세계의 신비종교 보다는, 전통적인 유대교의 종말론의 빛에서 이해하는 것이 보다 적절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바울이 출생한 다소(Tarsus)는 물론 그의 선교의 활동 주무대였던, 에베소, 고린도, 빌립보, 데살로니가와 같은 그의 거점 도시들은 거대한 경기장과 원형극장, 아고라, 로마식의 목욕탕 그리고 다채로운 그리스의 신들에게 바쳐진 수많은 신전들이 즐비하게 늘어선 전형적인 그레코-로만풍의 도시들이었다. 당시 그레코-로만의 도시들은 전통적인 그리스의 폴리스(polis)의 관습에 따라 자신들의 도시들을 수호해 줄 파트론 신(patron gods)들의 신전을 건립하고, 이들에게 바치는 신비제의를 통해 도시의 안전과 풍요를 기원하고 있었다. 그리고 로마로부터 자치권을 얻은 도시들은 로마제국에 대한 충성심 경쟁의 일환으로 황제제의(imperial cult)를 성행시키고 있었다. 바울은 이러한 그리스 신들과 신격화된 로마황제들에 대한 숭배의 열기를, 자신이 거쳐 간 그레코-로만의 도시들에서 목도하게 되었다. 심지어는 이러한 풍조가 자신이 건립한 교회에까지 밀고 들어와 교인들을 교란하고 있었다. 우리는 이러한 장면들을 바울의 편지들에서 빈번히 목격하게 된다. 가령, 고린도 전서 8장과 10장에서는 우리는 이방신들에게 바쳐진 우상의 제물을 먹는 문제에 대해 혼란을 겪고 있는 교인들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당시 고린도는 상업의 중심지로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를 위한 거대한 성전이 건립되어 있었고, 그녀를 숭배하기 위해 몰려온 타지 사람들로 흥청 되던 관능의 도시였다. 또한 사도행전 19장은 바울이 에베소에서 아르테미스(Artemis) 여신 때문에 곤욕을 치룬 사건을 보도한다. 아르테미스 신전에 기생하며 신상모형 장사로 이익을 남기던 데메드리오라는 은 세공업자가 바울의 가르침이 자신에게 손해를 끼치자 그를 신성모독으로 고발하며 소동을 벌였다.

이처럼 그리스의 신들에 대한 그레코-로만의 도시들의 숭배 열기는 바울의 선교에 직간접으로 영향을 미쳤다. 바울은 복음을 수호하기 위해 그레코-로만의 신들에게 바쳐진 신비제의와 그 사상들과 직접적으로 대결하는 한편, 때로는 이들의 논리를 복음을 변증하기 위해 비판적으로 차용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바울은 그리스의 종교적 중심지 아테네에서 아레오바고 법정에서 행한 연설을 통해 그리스의 다신론을 상대적으로 인정하면서 자신의 복음을 변증하기도 하였다 (참조, 17:22-31).

이처럼 바울의 생애와 사상에 당시 그레코-로만의 문화가 직간접으로 큰 영향을 미쳤다. 때문에 바울의 사상은 유대교의 순수성을 벗어난 혼합주의자로 끊임없이 의심을 받았다. 사실 바울에 관한 평가는 그의 당대에도 엇갈리는 것이었다. 그의 대적자들은 끊임없이 바울의 복음이 지니는 탈유대적 경향을 공격했으며, “그가 약하고 말이 시원치 않다”(고후 10:10)고 얕잡아 보기도 했으며, 혹자는 그의 편지가 어렵고 난해하다’ (벧후 3:16)고 평가하기도 했다. 더욱이 바울 사후에, 마르시온이라는 부유한 로마의 상인은 바울의 편지들을 영지주의적 관점에서 독해하여, 바울을 영지주의 사상가로 둔갑시켜 버렸다. 또한 4세기 경에 교회에 유통되었던 바울과 테살라 행전’(The Acts of Paul and Thecla)이라는 외경 문서에는 바울을 흠모하는 테살라라는 여인과 바울의 신비적인 행각이 묘사되어 있다. 일정한 기준 없이 바울에 관한 전승들이 이렇듯 와전되자, 초대교회 지도자들은 서둘러 신약 문서들의 정경화(canonization) 작업을 진행하여, 당시에 유통되었던 바울에 관한 저작 중, 직계사도들의 증언과 일치된다고 평가되는 문서들을 교회의 정경으로 편입시켰다.

이처럼 교회 안에서 바울은 위대한 신앙 영웅으로 추앙을 받아 왔으며, 한편 교회 밖의 비평가들은 그를 예수의 진보적 생애와 사상을 추상화하고 제도화한 인물로 재단되어 왔다. 그러나 바울에 대한 이러한 극단적인 평가들은 지양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모든 시대는 자신의 시대가 요구하는 바울상을 그려 왔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지난 시대 바울의 편지는, 노예제도와 부당한 국가권력과 그리고 교회 안에서의 여성의 권리를 억압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근거로 오용되어 왔다. 이러한 바울에 대한 잘못된 이해는, 결국 그리스도 안에서 유대인이나 그리스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차별이 없다’(3:28)는 바울의 원래 메세지와 얼마나 동떨어져 있는 것인가!

 

. 바울 서신의 역사적 의의

신약성서 문서 중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바울의 편지들이다. 사실 신약성서라는 문서자체를 놓고 본다면, 어떤 면에서 바울이 예수보다 더 비중 있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예수는 어떠한 저작도 후대에 남기고 있지 않다. 이에 비해 사도바울의 저작들은 신약성서의 중추를 구성한다. 또한 그의 사상적 후계자를 자처하는 인물들은 그의 이름으로 많은 저작들을 남기고 있다. 심지어 초기 기독교 지도자들에 의해 이단으로 간주되었던 영지주의자들도 자신들이 바울의 적자임을 강조했다. 신약정경에 바울의 이름으로 남아있는 데살로니가후서, 골로새서, 에베소서, 디모데 전/후서 그리고 디도서와 같은 서신들은 바울의 계승자들이, 1세기말엽과 2세기 초반에 바울의 이름과 권위를 빌려, 제도화되어 가는 교회의 치리와 질서를 위해 기록한 저작들이다.

16세기 초반 종교개혁의 지도자 마틴 루터는 부패한 카톨릭에 저항하기 위해서 바울의 편지로부터 자신의 개혁운동의 근거를 발견하게 된다. 로마서 3장과 갈라디아서 2장에 나타나는 소위, 칭의론(稱義論) 단락이 그것이다. 칭의론의 요지는, 진정한 구원이란 하느님의 선물이지, 인간의 선한 행동만으로 성취될 수 없다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율법준수나 선행이 아니라, 예수를 믿는 믿음이다. 바울은 로마서 328절에서 자신의 견해를 다음과 같이 피력한다. “사람이 율법의 행위와는 상관없이 믿음으로 의롭다고 인정을 받는다고 우리는 생각합니다.”

루터는 당시 로마 교황이 베드로 성당의 건립 기금을 모금하기 위해 면죄부를 판매한 것은 돈으로 구원을 획책하는 율법적 행위로 간주했다. 루터에게 있어 구원은 하느님의 전적인 의지와 은총에 달린 문제였지, 인간이 돈으로 거래할 성질의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런 점에서 루터의 종교개혁을 통해 카톨릭에서 분화된 개신교는, 바울의 사상을 기반으로 성립된 종파라고 할 수 있다. 유독 개신교도들이 믿음을 강조하는 것은 아마도, 율법준수보다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믿음을 강조한 바울의 사상에 연유한 탓일 것이다. 바울이 남긴 7편의 편지들(데살로니가 전서, 갈라디아서, 고린도 전/후서, 빌립보서, 로마서, 빌레몬서 등) 속에 나타난 사상들과 그의 생애는 그의 주된 활동무대였던 1세기 그레코-로만 세계를 배경으로 살펴보아야 한다. 이를 통해, 우리는 바울이 단순히 예수의 사상적 계승자에 머물고 있는 인물이 아니라, 그레코-로만이라는 새로운 지형에서 예수의 사상을 창의적 펼친 인물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그는 자신의 시대와 정직히 대결하며 하느님 의 의’(dikāiosyne theou, the righteousness of God)라는 새로운 대안적 삶의 질서를 위해 고투했다.

언젠가 디모데 후서를 읽다가, 자신의 낡은 외투와 양피지로 만든 책을 전해 달라고, 자신의 제자, 두기고에게 부탁하는 지극히 인간적인 바울의 모습을 발견하고 큰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이를 계기로 추상적인 신학사상만을 통해 바울을 이해하고자 했던 자신을 크게 반성하게 되었다. 나의 신학에 이 빠져 있다는 부끄러운 자각이었다. 인간적으로 볼 때 바울은 동료들의 몰이해와 적대자들의 위협 속에서 고단한 생을 영위하다 결국은 로마에서 순교한, 어찌 보면 자신의 시간 속에서는 실패한인물이었다. 그러나 그의 실패한 삶 속에서 우리는 희생과 사랑이라는 생수를 여전히 길어내고 있지 않은가!

. 바울의 <로마서>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

오래전, 렘브란트가 그린 바울의 초상을 본 적이 있었다. 바울에 관한 그 어떤 책에서도 찾아 볼 수 없었던 그의 내면 풍경을 탁월하게 묘사하고 있는 렘브란트의 천재에 경의를 표할 수밖에 없었다. 빛의 화가라는 세평에 걸맞게 감옥의 창가로 스며드는 빛이 바울의 배후를 후광처럼 감싸고 있으며, 그가 앉은 침대 한 켠에는 아마도 그가 받았거나 보내야 할 편지들이 잔득 쌓여 있다. 무릎 위에 펼쳐진 쓰다만 편지 뭉치! 그리고 펜을 잡고 있는 그의 허약한 손엔 힘줄이 도드라져 보인다. 초점 없이 정면을 응시하는 그의 두 눈엔 한 시대를 풍미한 경륜의 전도자가 지녀야 할 위엄의 눈빛보다는, 시대의 풍파를 힘겹게 넘어 온 초췌한 늙은이의 세상을 향한 무위의 눈길을 발견하게 된다. 너무나 인간적이기에 오히려 숭고해 보이는 늙은 바울의 초상에서, 고난을 극복한 당당한 영웅의 자태보다 고난과 더불어 살아 온 성숙한 한 인간의 참 모습을 보게 된다면 나의 감상이 지나친 것일까? 평자들의 지적처럼 이 그림 속에는 렘브란트 자신의 말년의 모습이 투영되어 있다는 것도 사실일 터이다. 어차피 모든 초상은 작가 자신의 또 다른 자화상이니까! 그래서 나는 별반 이의 없이 렘브란트의 바울에 동의한다. 번잡한 인간사에서 벗어난 산듯한 초월을 꿈꾸어 왔던 사람들에게 렘브란트가 그린 바울의 초상은 진정한 신앙의 성숙은 세상을 넘어서 있는 것이 아니라, 세상과 함께 세상을 포월(抱越)’하면서 이루진다는 가르침을 전해 준다. 구원에 대해 너무나 손쉬운 질문들과 답변들이 난무하는 현실 속에, 바울의 다음과 같은 고백은 값싼 은혜에 쉽게 안주하려는 우리의 신앙을 되돌아보게 한다.

 

내가 이것을 이미 얻은 것도 아니요, 또 이미 목표점에 이른 것도 아닙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나를 사로잡으셨으므로, 나는 그것을 붙들려고 좇아가고 있습니다” (3:12).

신약성서의 27권의 절반에 해당하는 13권은 바울의 이름으로 남아있다. 그가 그리스 북부에 자리한 데살로니카 교회에 보낸 첫 번째 편지는 신약성서 중에서 포함된 문서 중에서 가장 이른 시기에 기록된 것이다. 그는 최초의 신약저자인 동시에 기독교 최초의 신학자라 할만하다. 그가 제국의 수도 로마에 거주하던 교인들을 위해 쓴 편지(로마서)에는 기독교의 핵심적인 신학 사상들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예수는 누구인가? 그의 죽음과 부활이 인류에게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이스라엘의 특수한 역사가 인류에게 미치는 보편적인 영향은 무엇인가? 어떻게 인간은 죄의 세력에서 해방될 수 있는가? 새로운 존재로서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 바울은 자신의 종교적 체험을 토대로 확신에 찬 어투로 기술하고 있다. 로마서가 서구역사에 미친 위력은 동북아시아에 끼친 공자의 <논어>의 영향력을 상회한다.

5세기 북아프리카, 히포의 주교였던 어거스틴은 로마서 12장을 통해 기독교인으로 회심하였고, 그 결과 서구의 교부철학을 개막한 인물이 되었다. 종교개혁을 시작한 마틴 루터 또한 로마서 3장에서 전개되고 있는 소위 칭의론에서 자신의 개혁 사상의 기초를 발견하였다. 계몽주의 이후, 서구의 낙관적 세계관은 1차 세계 대전이라는 거대한 학살극을 불러왔다. 도구적 이성 중심주의가 불러온 잘못된 세계관과 인간관의 치유를 위해 1차 대전의 폐허 더미에서 칼 바르트(karl Barth)는 로마서 속에서 치유의 싹을 발견하였다. 그에 남긴 걸작,로마서 주석은 이렇게 탄생하였다. 이처럼 바울은 기독교 역사 아니 서구역사에 심대한 영향을 미친 신학자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는 도서관에 안주하며 자신의 생각을 한가롭게 가다듬은 인물이 아니었다. 그는 거리의 신학자요, 길 위의 구도자였다. 그는 당시 로마제국이 자신들의 식민지 지배를 용이하게 할 목적으로 건설해 놓은 군용도로와 해상 운송로를 부단히 여행하며 예수의 가르침을 지중해의 대도시에 전파한 인물이었다. 그가 주파한 거리는 1만 마일이 넘는다. 고대세계에 변변한 교통수단도 없던 시대에 자신의 몸만을 의지하여 예수의 ()’를 전파하기 위해, 헌신한 그의 이력 속에서 우리는 자신의 신념에 투철한 한 인물의 열정적인 인생을 감동적으로 목격하게 된다.

바울은 정녕 길 위의 사람이었고, 진리에의 순교자였음을 다음과 같은 그의 고단한 삶이 입증하는 바이다.

 

우리는 지금 이 시간에도 굶주리고 목마르고 헐벗고 매맞으며 집 없이 떠돌아 다니고

있습니다. 그리고 손발이 부르트도록 노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를 욕하는

사람을 축복해 주고 우리가 받는 박해를 참아내고 비방을 받을 때는 좋은 말로 대답해

줍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도 이 세상의 쓰레기처럼 인간의 찌꺼기처럼 살고 있습니다

(고전 4:11-13).

 

“(나는) 감옥에도 더 많이 갇혔고 매는 수도 없이 맞았고 죽을 뻔한 일도 여러 번 있습니다.

유다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를 감한 매를 다섯 번이나 맞았고, 몽둥이로 맞은 것이 세 번,

돌에 맞아 죽을 뻔한 것이 한 번, 파선을 당한 것이 세 번이고 밤낮 하루를 꼬박 바다에서

표류한 일도 있습니다... 그리고 노동과 고역에 시달렸고 수없는 밤을 뜬 눈으로 새웠고

주리고 목말랐으며 여러 번 굶고 추위에 떨며 헐벗은 일도 있습니다고후 11:23-27).

유학생활 중에 영국 BBC방송에서 10회에 걸쳐 방영된 위대한 영국(Greatest Britons)’이란 TV프로를 흥미 있게 본 적이 있다. 이 방송을 지켜보면서 내 가슴속에 드는 생각은 과연 무엇이 한 인간을 위대하게 만드는가?’라는 물음이었다. 마지막 회분인 윈스턴 처칠의 생애를 지켜보면서 나름대로 내 자신의 질문에 답변을 구하게 되었다. 그것은 한 인간을 위대하게 만드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는, 자신의 일에 대한 열정(passion)과 자기희생이라는 깨달음이었다. 물론 분별없는 열정은 대개가 광신으로 치닫게 되지만, 자기희생의 덕목이 열정을 뒷받침 할 때, 왕왕 후세에 의미 있는 삶의 족적을 남기게 되기도 한다. 우리는 바울의 생애 속에 이 두 가지 요소가 이상적으로 녹아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한 바울의 열정(passion), 그를 불후의 복음 전도자로 기억하게 만들었으며, 필경에는 그로 하여금 진리에 대한 수난(Passion)을 기꺼이 감수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시대를 앞서가는 진리에의 열정은 대개 수난과 맞닿아 있음을 이미 소크라테스와 예수의 순교사가 보여주고 있다.

우리가 2000년 전 고대인 바울의 삶과 사상을 다시 생각한다는 것은 우리가 지닌 믿음의 기원을 되묻는 작업이다. 동시에 전통이란 이름으로 우리의 믿음을 규정하고 있는 도그마들이 얼마나 바울의 생각들과 달라져 있는가를 반성하는 일이기도 하다. 따라서 바울의 이름으로 후세에 덧 씌워진 신학적 편견들로 그의 편지들을 읽는 것은 지양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우리는 바울의 편지들의 행간에 묻어 있는 새로운 세계를 위한 그의 열정과 뜻을 같이한 동료들에 대한 사랑을 읽어야 한다. 그의 편지들은 우리와 같이 일상적인 삶의 문제들로 고민하고 갈등했던 교우들에게 보내는 사랑과 충고의 편지들이었다. 그리운 이들을 생각하며 한밤을 지새우며 긴긴 사연의 편지를 써본 분들을 알 것이다. 편지라는 장르에 담긴 사랑의 파토스(pathos)! 보내는 이와 받는 이의 공유된 삶에서 연유하는 행간을 채운 내밀한 사랑과 그리움이 바로 편지를 가능하게 하는 힘인 것이다.

지난 시절 바울의 편지들을 신학적 교리서로만 읽어내던 이들은, 결코 그의 편지에 묻어 있는 풋풋한 인간적인 그리움의 향내를 맡지 못했으리라. 하여 우리가 먼저 느껴야 할 것은 바울의 복잡한 신학적 사유이기보다는, 그 배후에 자리한 신앙의 벗들에 대한 그의 염려와 사랑이 마음일 것이다. 저 유명한 바울의 사랑의 찬가는 이러한 바울의 마음자리를 읽지 않고서는 이해되기 힘들다. 고린도 교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내분과 갈등을 자기의 아픔처럼 염려하는 그의 지극한 동지애를 전제하지 않고서는, 이 단락은 저잣거리를 울리는 그 흔한 또 하나의 사랑타령으로 오해되고 말 것이다.

 

이제 내가 가장 좋은 길을 여러분에게 보여드리겠습니다. 내가 천사의 말을 할 수

있을지라도, 내게 사랑이 없으면, 울리는 징이나 요란한 꽹과리가 될 뿐입니다. 내가

예언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을 가지고 있을 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내가 모든 소유를 나누어줄지라도, 내가 자랑삼아

내 몸을 넘겨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는 아무런 이로움이 없습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친절합니다. 사랑은 시기하지 않으며, 뽐내지 않으며, 교만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무례하지 않으며, 자기의 이익을 구하지 않으며, 성을 내지 않습니다. 사랑은 불의를

기뻐하지 않으며, 진리와 함께 기뻐합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 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딥니다. 사랑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언도 그치고,

지식도 사라집니다...그러므로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가운데서 으뜸은 사랑입니다.” (고린도 전서 131-13)

 

전통적으로 기독교회는 바울의 편지들을 일련의 신학논문으로 취급해 왔다. 가령, 종교개혁의 선구자 마틴 루터(Martin Luther)는 바울의 편지들을 “(인간의 선행이나 공로가 아니라) 믿음으로만 (신 앞에) 의롭게 된다는 칭의론에 관한 교리서로 읽어 왔다. 이 때문에 그는 칭의론에 관한 언급이 없는 <야고보서>와 같은 신약문서를 지푸라기 서신이라 부르며 낮게 평가하였다. 이러한 루터의 영향력은 후대의 연구에도 영향을 끼쳐 최근까지도 전통적인 연구들은 바울의 편지들을 칭의론에 관한 무시간적이고, 추상적인 교리서로 이해하여 왔다. 그러나 최근의 바울 연구는, 그의 편지들을 더 이상 보편적인 신학논문으로 간주하지 않는다. 원래 바울의 편지들은 지중해에 산재한 그레코-로만의 대도시들에 살고 있던 일반 독자들의 신앙을 격력하고 그들에게 올바른 가르침을 주기 위한 구체적인 목적을 지닌 글들이다.

다시 말해 원래 바울의 편지들은 기독교의 보편적 교리를 불특정 다수에게 설명하기 위해 기록 된 것이 아니라, 바울 자신이 로마제국의 대도시들 속에 일구어 놓은 공동체 내에서 벌어진 구체적이고, 특수한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도에서 쓰여진 상황적 문건들’(occasional documents)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갈라디아서는 진정한 예수의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유대 율법과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강변하는 보수적인 유대적 크리스찬들의 선동으로부터 이방인 크리스찬들을 방어하기 위해 작성된 긴급한 편지이다. 따라서 갈라디아서에 드러나는 바울의 언사는 매우 직설적이고 과격하다. 가령 할례의 문제로 선동하는 이들에게 바울은 아예 성기를 짜르라’(5:12, ‘아포콥토’)는 폭언을 서슴치 않고 있다. 이와 같은 바울의 극단적인 언사는, 갈라디아 공동체가 처한 정황을 염두에 두지 않고는 이해하기 힘들다.

한편 신약문서 중 가장 이른 시기에 씌어진 것으로 평가되는 데살로니가 전서에서(주후 50년경에 기록된 것으로 추정. 복음서 중에 가장 빨리 기록된 마가복음은 주후 70년경에 기록된 것임), 바울은 예수의 지연된 재림 문제와 죽은 신자의 부활문제로 동요하는 데살로니가 교회 사람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또한 흔히 기독교 복음을 위한 최대의 교리서로 간주되어 왔던 로마서조차 로마교회에서 발생한 강한자약한자의 갈등을 조정하려는 구체적 의도에서 작성된 편지라는 것이 최근의 연구를 통해 입증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실제적 문제 해결의 수단으로 기록된 바울의 편지들이 교회의 정경으로 편입된 사실에서 우리는 실로 가장 특수한 것이 가장 보편적이라는 작금의 명제를 확인하게 된다. 따라서 그의 글은 정연한 논리를 따르기보다는 대체로 시급한 사안에 대한 실제적 해답을 제공하기 위한 의도로 쓰여진 것이지, 신학적 고담준론을 한적하게 사색하며 토론할 목적으로 작성된 것이 결코 아니다. 이런 까닭에 그의 글은 도서관에서 집필된 논문으로서가 아니라, 피와 땀으로 서려있는 구체적 현장에서 기록된 육필로 이해되어야 하는 것이다.

서구의 사상사는 바울을 언제나 천재적인 신학자로 그려왔다. 어거스틴이 그랬고, 루터가 그러했으며, 칼바르트와 불트만이 그러했다. 그러나 바울은 현장과 유리된 신학자가 결코 아니다. 오히려 그는 유대인들의 몰이해와 로마 당국의 박해의 와중을 온 몸으로 돌파하며 (cf. 고전 4:11-13; 고후 11:23-27), 갈릴리의 촌락에서 움튼 예수운동을 로마제국의 한복판에 일구어 갔던 조직가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마치 구한말 동학의 해월이 최제우의 처형이후, 38년 동안을 조선반도를 전전하며 동학의 접()과 포()를 조직했던 것에 비견될 수 있을 것이다.

하바드 신과대학에 오랫동안 재직한 스웨덴 출신의 스텐달 (K. Stendahl)이라는 학자는 1960년대 초반에 사도바울과 서구의 내성적 양심”(The Apostle and the Introspective Conscience of the West)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하여 서구인들의 전통적인 바울이해를 뒤흔들어 놓았다. 이 논문에서 그는 서구의 내성적이고 개인적인 바울이해가 하나의 오류임을 지적하고, 바울의 신학은 개인적이기 보다는 공동체적이고, 추상적이기 보다는 구체적인 삶의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함을 강조하였다. 특히 루터나 멜랑히톤 같은 종교개혁자들에 의해 기독교의 핵심교리 중에 핵심으로 간주되었던, ‘칭의론이방인 개종자들의 권리를 수호하기 위한 구체적이고도 특수한 목적을 위해 제기 된 것이라는 주장함으로써, ‘칭의론의 사회-역사적 삶의 자리를 복원시킬 것을 강조한다. 한편 우리가 흔히 죄에 대한 바울의 개인적이고 실존적인 고민의 증거로 자주 거론하는 롬 7:23-23절이 고대인 바울의 사유와는 별 관계가 없다고 주장한다. 즉 프로이드 심리학이 현대인들에게 선사한 개인의 내면적 심리지도는, 이 천년 전에 살았던 고대인 바울과 무관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스텐달의 연구는 대다수의 바울 연구가 현대인이 가치관을 바울에게 강제함으로써, 우리가 얼마나 많은 시대착오적 해석(anachronism)을 범하고 있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따라서 바울의 사상을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1세기 당시의 청중들이 어떻게 그의 편지들을 이해했는가를, 그 시대의 사상과 문화에 터하여 독해하는 작업이 선행되어야한다. 이래야 만이 최소한의 합리적 해석의 기초가 생기게 되는 것이다. 또한 바울 텍스트가 전하는 1세기의 의미를 우리시대가 직면한 다양한 문제의식과 연결하여 재해석하고, 우리 삶 속에 재현하는 작업이 또한 필요하다. 이러한 해석의 두 차원이 조화롭게 순환할 때, 바울의 편지는 우리의 삶과 비로소 대화하기 시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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